:::::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
 
 
 
 
 
 
 
 
작성일 : 13-09-17 18:07
독후감 당선작 대상(초중고)
 글쓴이 : 김승구
조회 : 3,555  
   [독후감-초-중-...doc (141.0K) [22] DATE : 2013-09-17 18:07:42
나는 꽃피는 봄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세종글로벌 학교 고등부 이화윤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바라던 무언가가 내 죽음으로 인하여 이루어 진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볼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또 나는 생각해 왔다. 그 무언가가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면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지만 나중에. 늙어서. 죽을 때 즈음에. 나는 지금이 아닌 나중 일로 미루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내 생각이 변화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우선 나는 목사님, 선교사님 자녀로서 나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고, 하나님께서 당연히 나를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밤중에 내 이름을 부르실 날만 기다려 왔다. 그런 내게 손양원 목사님이 하신 업적들과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 땅에서 흘린 피, 예수님 때문에 기꺼이 내놓았던 목숨과 인생여정 속의 고난들을 대단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다른 누군가의 일이라고 생각 했고, 내가 바라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고난만 당하다가 죽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사용하심이 아니었다. 나를 다윗과 솔로몬처럼 사용하시길 바랐다. 그렇다고 내가 고난 없이 그런 삶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고난과 역경이 있는 것처럼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오직 예수님을 위한 핍박과 고난이 아닌 나 자신의 계발을 위한 연단과 고난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문제는 나 하나만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으면 젊을 수록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꿈이 많기 때문에 순교하기 원한다고, 하나님께 내 삶과 꿈을 내려놓겠다고 고백하기 쉽지 않다. 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 하였다. 하나님께도 사용 받고, 세상에서도 성공하는 삶이 내 목표였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내 자신과 타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내려놓지 못한 것이라고.
‘꽃피는 봄날에만 주의 사랑 있음인가 땀을 쏟는 염천에도 주의 사랑 여전하며 열매 맺는 가을에만 중의 은혜 있음인가 추운 겨울 주릴 때도 주의 위로 더할 것은 솔로몬의 부귀보다 욥의 고난 더하고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 아름답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 유혹의 손길 되나 고생중의 인내함은 최후 승리 이룩하네’. 이 ‘꽃피는 봄날에만’이라는 시는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를 바라고 꽃피는 봄날만 기다렸던 내게 욥의 고난과 인내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고, 그런 고난과 인내를 경험한 손양원 목사님과 여러 선교사님들, 그리고 이 애양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들이 목숨까지 내놓으며 고난을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음에서부터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주께서 주셨으니 이 모든 것 다시 주께 드립니다.’ 라는 고백을 손양원 목사님뿐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바라던 삶을 살았던 다윗과 솔로몬도 하였다는 것,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솔로몬의 그런 고백을 보시고 크게 사용하셨다는 놀라운 그 의미를 나는 깨달았고 그 사용하심이 부귀와 지혜, 권력을 주셔서 사용하실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에 의해 ‘크게 사용하셨다, 작게 사용하셨다’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의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이들이 어떻게 끊임없이 성령 충만 할 수 있는가. 힘든 시기 속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풍요롭고 평안한 시기에서도 하나님을 찾고 주신 것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진정으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게 하고 나 역시 그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할 때는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지내다가 힘들 때만 주여, 주여 부르며 알랑방귀 뀌는 내 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죄송함에 힘들 때조차 염치가 없어서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자신까지도 하나님께 내려놓으려고 한다. 돌아오라고 항상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염치가 없다는 이유로 돌아오지 못하는 나의 모습에 더 실망 하실 것 같았고, 그런 알랑방귀 뀌는 모습조차 이해하지 못하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격적인 하나님이라고 하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마음과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기에 이런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하면서도 이런 나의 허점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를 자극한 것은 바로 성경암송이다. 우리 집은 성경을 중요시하고 성경암송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성경암송이 친숙하게 다가왔다. 또 앞이 안보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전체를 암송하신 양재평 장로님을 보고 우리가 암송을 하지 못할 핑계는 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암송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암송은 성령이 하신다. 기독교 신자라도 성경을 통독하고 암송한다고 하면 많이들 놀란다.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암송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다들 성경이 멀게 느껴지는지 안타깝다.
나는 우리나라 믿음의 역사를 보면서 청소년인 우리가 이 역사를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난 행하심을 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이 뒤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답은 간단하다. 이 믿음을 우리 후세에게 전달하는 것. 이 시대는 꽃피는 봄날에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할 것인가가 문제인 것 같다. 이전에는 춥고 주린 겨울날이었기 때문에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 가졌고 하나님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에 믿음을 지켜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을 그분께 맡기기로 했다. 하나님께 이렇게 나를 사용해 주세요가 아닌 하나님께서 필요한 곳에 나를 사용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날을 기다리되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그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염치없는 죄인의 모습이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나의 죄들을 하나하나씩 씻겨낼 것이고, 이렇게 하나하나 나는 하나님께 내려놓을 것이다. 앞으로 나를 사용하실 그날을 기다리며 등불을 키고 깨어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 될 나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6월 6일 현충일 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두 가지의 죽음을 나란히 보고 있다. 이 두 죽음이 한국을 이렇게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이런 한 두 사람의 헌신과 죽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의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린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나는 여러 선교사님과 목사님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우린 노력해야 한다. 의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이 말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마지막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의인 10명 중 한 명이 되는 것.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모이면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의인이 되기 위해선 말씀을 붙잡고 고난을 인내하는 것. 세상에 속지 않으려고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것밖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내 자신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것과 이 죽음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