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
 
 
 
 
 
 
 
 
작성일 : 13-09-17 18:06
독후감 당선작 대상(성인부)
 글쓴이 : 김승구
조회 : 3,824  
   [독후감-성인부1...doc (123.5K) [24] DATE : 2013-09-17 18:06:50
진정한 화해자 -'아! 愛양원'을 읽고
주 다 영

때 이른 폭염이라더니 한여름 못지않은 더위가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부른다.
이 더위에도 노는 일엔 누구보다 열심인 둘째 녀석은 물총을 들고 놀이터로 나선다.
남은 어린 두 녀석을 돌보며 저녁준비까지 하느라 한창 정신이 없을 때 물총을 들고 신나게 집을 나섰던 녀석이 울면서 집으로 들어섰다. 귓가를 때리는 그 울음소리는 나의 신경을 예민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왜 또 그래?”
“준섭이가 물총으로 내 손을 때렸어.”
손가락 끝에 피멍을 보여주며 큰 눈에 눈물을 뚝뚝 흘리다 급기야는 통곡을 하는 아들을 보며 나의 불쾌지수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그래서? 넌 맞고만 있었어? 너도 때려주지 그랬어? 바보같이 맞고만 있으니까 걔가 자꾸 너를 만만하게 보고 괴롭히는 거 아냐? 앞으로는 걔랑 놀지마!”
따뜻하게 안아줄 거라 생각했다가 되려 엄마에게 된통 쓴 소리를 들은 아들은 엄마의 신경질적인 반응이 야속한지 더욱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담부터는 준섭이랑 놀지마.” 하며 흐느끼는 아들을 슬쩍 안아주었다.
그런데 아들을 안던 순간 유난히 눈에 띄던 책장 속 굵은 글씨 “아! 愛양원”
어릴 때 엄마에게서 자주 들었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가 아이들도 읽기 쉬운 만화로 나왔고, 수익금은 목사님의 신앙과 정신을 기리는 좋은 사업에 쓰인다는 말에 책을 사서 아들에게 건넸었다. 책을 다 읽은 아들이 목사님이 참 불쌍하다며 엄마도 읽어보라고 권하길래 책을 읽었던 차였다.
‘누군가 오른뺨을 때리면 너는 왼뺨을 때려라.’, ‘ 누군가 피해를 되로 주면 너는 말로 되갚아줘라.’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가진 부모로서 은연중에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가? 절대 손해 보거나 지지 말고, 권리를 주장하고 피해보상까지 받으며 야무지고 똑똑하게 살라고 사람들이 가르치는 대로만 가르치고 통념대로만 교육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나의 상식과 통념으로 사랑하는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자신의 아들로 삼는다는 것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일인가? 아니 가능이나 한 일인가?
이해되고 가능한 선에서만 살아가는 나로서는, 상식의 선에서만 살아가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삶이었다.
친구에게 맞고 들어온 우리 아이에게
“친구에게 한 대 맞으면 어때? 용서해주고 다음부터는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도록 니가 더 잘해줘 봐.” 그랬어야 하는 걸까? 생각만으로도 쉽지가 않은 일이다.
친구간의 사소한 다툼에도 포용이 허락되지 않는 이 좁은 마음에 손 목사님의 삶이란 멀게만 느껴졌다.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6월을 맞아 우리교회는 특별한 시간을 갖고 있다.
오후예배시간에 ‘평화통일학교’를 열어 통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요한 소양과 지식을 갖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북한을 품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통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평화통일학교 세 번째 시간.
그날의 강의 제목은 “화해자로 서라”이었다.
오전 말씀도 ‘성도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목사님은 6.25와 관련된 여러 가지 영상들을 보여주시더니 이야기 말미에 ‘르완다’라는 나라의 내전에 대해 말씀하셨다. 르완다 내전은 투시족과 후투족 사이의 종족 전쟁으로 100일 동안 무려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정말 잔인하고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민족 간의 유혈 사태였다. 그 전쟁 후 10년이 지난 지금, 그 땅은 치유의 과정을 거쳐 아프리카 땅에서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희망의 땅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
서로 죽고 죽이던 그 분노와 죽음의 땅이 용서와 화해의 땅으로 치유될 수 있었던 과정에는 기독교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컸다고 말씀하시며 영상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도미틸라 무칸타마나’ 라는 여성으로 이 여성은 난리 중에 남편과 자식을 잃었는데 그들을 죽인 후투족을 용서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안아주며 화해자의 역할을 했다고 소개하셨다.
和解者! 손양원 목사님이 생각났다.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었던 화해자,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긴 진정한 화해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남과 북의 대립, 여야의 대립, 이념의 대립...... 우린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살아간다.
작게는 내 안의 대립으로부터 가족 간의 대립으로 크게는 민족 간의 대립으로까지••••••.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지만 우리 안에 정말 사랑과 관용이 있는지 손양원 목사님의 일생을 통해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어쩌면 더 옹졸하고 더 야박하고 더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진리 앞에는 타협하지 않으나 관계에 있어서는 더 넓고 관대해야 하지 않을까?
신사 참배와 우상숭배 앞에서는 절대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았으나 약자 앞에서는 더 없이 관대하고 사랑 많았던 손양원 목사님.
아버지의 믿음이 그 아들 동신과 동인이 순교의 자리로 나가기까지 이어짐을 보며 부모로서의 나의 믿음이 내 아이들에게 대물림 될 만한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목사님의 사랑이 수많은 한센인이 믿음의 자리로 나가기까지 이어짐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사랑이 내 이웃들에게 전도의 선한 영향을 미칠 만 한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목사님의 용서가 아들을 죽였던 재선과 그 아들 경선이 주의 종의 자리로 나가기까지 이어짐을 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나의 용서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덕을 미칠 만 한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남북의 대립과 아픔이 남아있는 이 땅, 진정한 용서와 평화가 필요한 이 땅 한 많고 굴곡 많은 역사 가운데 진정한 화해자로 나설 수 있는 손목사님과 같은 분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사랑과 용서를 갖고 나설 진정한 화해자는 피흘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닐까?

산 사랑을 봅니다.
돌같이 단단한 마음을 녹이며
손해보고
양보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라 합니다.
목사님의 그 마음
사랑함에 지극하셨던 그 마음에서
님 향한 일편단심을 봅니다.